<앵커 멘트>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사건이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공개 이 후 NLL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는데요.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부터 여러 차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정상회담 대화록 안에는 NLL 포기 발언이 없었는데요. 새누리당은 이번에는 정상회담 녹음자료를 틀면 노무현대통령의 NLL 포기의도가 드러날 것이라며 계속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화록을 공개한 이 후에도 해소하지 않는 새누리당의 의심은 어디에 근거가 있을까요?
최기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기훈 기자> NLL 문제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지 반년이나 지난 지금 또다시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서 이 논란이 시작됐을까?
지난해 9월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북한이 기존 남북 간 해상경계선을 존중하면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에 대해 북한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또 남북 기본합의서에 들어간 기존 해상경계선의 존중을 언급하면서 남북 대화국면의 조성을 강조합니다.
당시 다른 대선 후보들과 비슷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북한이 문제를 삼고 나섭니다.
[조선중앙TV] “북방한계선 존중을 전제로 10.4.선언에서 합의된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 년의 떠벌림이나 다른 괴뢰당국자들의 북방한계선 고수 주장은 그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북남 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다.”
남북정상회담 때 마치 공개되지 않은 별도의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 것입니다.
줄곧 서해 북방한계선 무력화를 시도했던 북한이 한국의 대선국면을 활용해 또다시 NLL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의도적인 발언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북한의 이런 정략적 주장을 덥석 받아 이슈화시킨 것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었습니다.
북한의 발언을 발판삼아 NLL논란을 대선국면의 한 가운데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북한이 말한 ‘우리가 몰랐던 10.4 공동선언의 내용’이 이것이라면서 정상회담 대화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NLL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곳에서 공동어로활동을 하면 NLL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구두약속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이것이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우리가 무지해서 모른다는 10.4 공동선언의 경위와 내용입니다.”
정 의원이 MB정부의 통일비서관 출신인데다 정치적 생명까지 걸겠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지난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제가 문제제기를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핵심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NLL 발언은 사실임을 재차 확인 드리고 정치적 명예를 걸겠다는 말씀 또한 재차 확인 드립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국방장관으로 수행했고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이끌었던 김장수 씨도 한 몫 거들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새누리당 선대위의 국방안보추진단장이었습니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 “근데 선언문 자체에 NLL에 대해서는 일체 말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행으로 생각했어요 그거를. 그래서 NLL을 다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정문헌 의원입니까? 그 분 발언...보니까 혹시 이쪽 다르고 저쪽 다르고 그런 것 아니냐? 라는 의문이 좀 들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NLL논란은 대선국면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국정원이 공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보면 정문헌 의원의 지난해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문 어디에도 ‘골치 아프다’는 말도, ‘땅따먹기’란 말도 ‘남측이 앞으로 NLL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란 말도 없었습니다. 정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민주평통 자문회의에서 했던 말과 헷갈렸다고 자신의 오류를 시인했습니다.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걸고넘어지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한 달 뒤 평양에서 열린 남북국방장관 회담 때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측 김장수 국방장관이 “NLL을 인정해야 공동어로수역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북한의 김일철 무력부장이 “노무현대통령도 NLL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보라”며 자신을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김장수 전 국방부장관] ““노무현 대통령이 NLL은 문제가 있는 선이다 재검토가 돼야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국방부장관인 김장수 장관은 왜 그와 반대되는 얘기를 해가지고 회담을 진척을 못시키느냐”그런 질문이...그런 나를 공박 한 거죠. 그런 말이 있었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어봐라 전화를 해봐라” 말이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김일철의 발언을 인용한 김 전장관의 인터뷰 내용을 일제히 기사화 했고 새누리당도 이를 근거로 NLL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김일철이 했다는 당시 발언은 서로 밀고 당기는 남북 회담의 특성상 장관급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북측의 전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김일철의 주장이 정상회담 때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지칭한 건지 아니면 민주평통자문회의 때 연설을 인용한 것인지도 불분명합니다. 김장수 전 장관 본인도 지난해 11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일철 발언의 근거가 뭔지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출처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북측 주장에 집권여당 관계자들이 장단을 맞춘 셈입니다.
새누리당이 지난해 내놓은 대변인 논평입니다. NLL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의 주장과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발언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NLL을 무력하기 위해 내놓은 북한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북한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새누리당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장관급 회담을 앞둔 상태에서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장수 전 국방부장관] “대통령께서 군이나 우리 국방부에 어떤 지역을, NLL을 소홀히 해라, 또는 뭐 이래도 좋다 그런 말씀이나 지침을 주신 적이 이제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군으로서는 지금 현재 취해온 우리 입장대로 끝까지 지켜나갈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장관급 회담에 나서는 김장수 장관에게 NLL문제에 관해 소신껏 하라며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불가침경계선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내용을 합의서에 포함시킵니다. NLL을 준수하기로 양측이 합의한 겁니다.
하지만 보름 뒤 열린 장성급 회담에서 공동어로구역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놓고 남북은 합의에 실패합니다.
[YTN 보도] “회담에서 남측은 NLL 을 중심으로 4곳에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고 주장했고, 북측은 NLL 밑에 설정해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맞섰습니다.”
통일부가 내놓은 자료에도, 심지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도 우리 정부는 NLL을 기준으로 어로구역 협상에 나선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북한이 고집을 부린 대로 NLL을 포기한 흔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LL을 둘러싼 정치공방은 마치 판박이처럼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최근 지난해 새누리당이 즐겨 인용했던, 대선 당시의 북한 국방위 정책국의 주장을 새로운 것인 양 다시 실었습니다. “노 대통령에 전화해보라”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의 발언 내용도 큼지막한 활자와 함께 다시 신문 1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를 받아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의원 총회에서 10개월 전 새누리당 대변인 논평과 같은 내용을 또다시 주장했습니다.
대선 때 불거진 논쟁과 똑같은 공방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국가정보기관은 조직의 명예를 위한다며 정상회의록을 공개해 파란을 불러일으켰고 대한민국 국회는 대통령기록물 원본의 공개를 결의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지금 이게 논리의 문제입니까? 저도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게 전부 정치 국내정치의 하루하루, 정치적 계산에 의해서 하다 보니까 이런 게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저급한 나라가 됐어요.
뉴스타파 최기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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