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 48분 오른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바로 이 순간 화물들이 왼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
지금까지 세월호 침몰 경위 조사에서 드러난 사고 과정이다. 당시 세월호는 3등 항해사 박 모 씨의 지휘로 조타수 조모 씨가 수동으로 운항했다.
통상 자동으로 운항하는 구간에서 왜 수동 운항이 이뤄졌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갑자기 다른 선박 등 장애물이 나타났거나, 또는 엔진이나 설비 이상이 생겼을 경우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주변에 다른 선박은 없었고, 선체 이상에 대해서도 현재까진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그래서 지금으로선 조타수의 조작 실수였다는 것만 부각되고 있지만 조 씨는 “평소처럼 돌렸는데 이상하게도 키가 많이 돌아갔다”면서 자신의 과실을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세월호는 과연 무엇 때문에 급격히 방향을 꺾을 수밖에 없던 걸까.
뉴스타파는 지난해 하반기 세월호를 직접 운항했던 항해사 L 씨로부터 그 단서가 될 만한 중요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L씨는 세월호 선체 곳곳에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이상이 생기는 등 고장이 잦아 수시로 수리를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항해 도중 속도를 높여도 스크루 회전수가 올라가지 않으면서 엔진이 꺼지는 경우를 4차례나 겪었다고 했다. 이런 일은 인천 또는 제주에 거의 도착할 무렵 발생했다고 한다.
[L씨 / 전 세월호 항해사]
“항해 중에 시동이 꺼진다는 건 스크루가 안 도는 거죠. 항해 중에 스크루가 안 돌면 곧바로 재시동이 안되기 때문에 한참을 그냥 뒀다가 시동을 다시 겁니다. 이러면 조류가 센 해역이라면 배가 밀려가서 암초에 부딪칠 수 있는 여지도 있는 거죠.”
또 엔진과 직접 연결된 스크루 부근의 선체 외판에 대해선 근본적 처방 없이 수중 용접으로 땜질식 수리를 했다고 말했다. 뭔가에 부딪힐 경우 균열이 생길 수도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L씨 / 전 세월호 항해사]
“스크루 쪽에 많이 부식이 돼 있었고, 그 부분을 계속 교체가 아니라 보수만 했던 거죠. 4번을 배 밑에 들어가서 용접했는데 그 정도면 그 부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거든요. 스크루 연결 부위 쪽으로요. 이 부분이 약해져 있으면 스크루가 회전할 때 유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럼 문제가 커지는 겁니다.”
L씨는 선장에게 스크루와 엔진을 교체하거나 근본적인 고장 원인을 파악해 고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늘 임시방편식 보수로 끝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세월호 항해사로 일하는 게 너무 위험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세월호의 엔진과 스크루를 비롯한 주요 부위에 대한 고장과 수리는 L씨의 퇴사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최근 넉 달간의 세월호 수리내역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청해진해운은 지난달에 세월호 주엔진의 RPM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조절되지 않아 수리를 의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월에는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발전엔진에서, 이달엔 방향을 바꾸는 조타기에서 결함이 나타나 수리했다.
뉴스타파는 세월호의 숱한 기계적 결함과 일상적 고장, 특히 L씨의 증언처럼 잦은 엔진 정지가 이번 침몰 사고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을 사고 당일 세월호의 항적도를 통해 살펴봤다.
8시 47분까지 항속 17노트를 유지하던 세월호의 속도는 이후 1분간 14노트로 느려졌고, 곧이어 오른쪽으로 급격히 돌며 속도가 6노트까지 떨어지더니 이후부턴 조류를 따라 북쪽으로 표류하는 궤적이다. 속도가 떨어지는 추이를 볼 때 8시 47분 무렵부터 엔진이 멈춘 채 관성에 따라 운항했을 가능성이 있다. 급선회 당시 기관사 3명이 선장의 지시로 기관실을 벗어났다는 검경 합수부의 중간 수사 결과도 당시 엔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세월호처럼 큰 배의 엔진이 멈추면 조타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해양 선박 전문가는 “배는 정상 출력일 경우엔 조타키를 조금만 돌려도 쉽게 회전할 수 있지만, 속도가 떨어질수록 더 많이 돌려줘야 원하는 만큼의 회전각을 얻을 수 있다”면서 “세월호의 급회전 이전 메인 엔진이 멈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박 전문가도 세월호의 급속한 감속과 급회전은 엔진 고장이 있었다는 방증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후에도 엔진이 계속 살아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2009년 11월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아리아케호 침몰 사고는 세월호 침몰과 쌍둥이 사고로 불린다. 당시 큰 파도의 충격으로 내부 화물이 한쪽으로 몰리며 선체가 40도나 기울어졌지만, 그 상태로 동력을 유지하며 계속 항해했다. 이렇게 4시간을 버티며 해안까지 근접한 뒤 침몰해 승객 28명 전원이 구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의 운명은 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전직 항해사 L씨의 증언과 수많은 수리 내역들은 세월호의 기계적 결함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침몰 2달 전 선박 특별점검을 시행했던 해양경찰청은 세월호의 엔진과 스크루, 조타기 등 주요 설비 상태가 양호하다고 판정했다. 배에 심각한 이상 징후가 반복해 나타났는데도 땜질 처방에 급급했던 선사 측과 이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감독 기관, 이들의 탐욕과 태만이 초대형 참사를 부른 주요 원인이었음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