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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남매 간첩 증거, ‘허점투성이’



화교남매 간첩 증거, ‘허점투성이’





국정원의 국내정치개입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본업이라할 간첩사건 수사에서조차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혹은 ‘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올 1월 일부 언론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는 탈북자가 탈북자 1만명의 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간첩혐의로 구속된 유우성씨는 많은 젊은 탈북자들에게 모범사례로 부각돼 온 인물이었다. 북한에서 준의사로 지냈지만 한국에 와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공무원이 됐다. 그러나 유우성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화교였던 것이다. 화교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일년에 몇번씩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무역 등을 하며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 



여동생이 자백한 오빠의 간첩혐의



유씨의 여동생인 유가려씨는 오빠처럼 화교라는 신분을 숨기고 한국에 들어와 탈북자로 신고해 대한민국에 정착하려 했지만 그녀 앞에는 혹독한 심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2012년 10월 30일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수용된 유가려씨는 지난 4월 26일까지 179일 동안 독방에서 지내며 수사 아닌 수사를 받아야 했다. 수용된지 일주일 만에 화교 신분이 드러난 유가려씨는 이후 오빠와 아버지 , 그리고 자신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이고 오빠가 전해준 탈북자 정보를 세차례 보위부에 전달했고, 오빠가 5차례 밀입북했다는 등의 내용을 자백했다. 

여동생의 자백내용을 기초로 국정원은 유우성을 1월 초 구속해 수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빠 유우성씨는 완강하게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여동생 “합동신문센터에서 구타, 거짓자백 강요당했다”



드디어 4월 26일 오빠의 변호인들이 신청한 인신구제신청 재판 뒤 유가려씨는 합동신문센터를 나왔고,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의 자백이 구타와 회유, 기망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밝혔다. 유가려씨는 합동신문센터 조사관들이 머리를 때리거나 벽에 찧고, 구두굽으로 허벅 다리를 차거나, 전기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또한 오빠가 이미 자백했다며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자백을 하면 오빠와 함께 한국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회유도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 유가려씨의 자백을 근거로 짜여진 수사내용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뉴스타파는 국정원 수사결과의 여러 문제점을 취재했다.

 


언론보도는 탈북자 1만명 정보 전달->기소는 200명 전달->실제는 25~30명?



일부 언론은 탈북자 만 명의 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대서특필했지만 검찰이 기소한 것은 200명 정도에 그쳤다. 더구나 검찰은 정보가 구체적으로 전달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유우성씨가 메일 등으로 명단을 전달하지 않았겠느냐는 정도다. 그나마 검찰이 제시한 명단도 중복자가 많고 한국 출신자도 상당수 들어있다. 또한 명단을 전달했다는 시기 이후에 작성된 명단도 많아 실제는 국정원 주장처럼 주소까지 있는 탈북자 명단은 25-3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변호인들의 주장이다. 


또한 국정원은 유가려씨가 세차례의 명단 전달 중 두 차례를 QQ메신저로 전달했다고 했는데 뉴스타파가 유씨의 QQ메신저 가입시기를 확인한 결과 명단 전달 시기 이후인 것이 확인됐다. 



국정원은 5번 밀입북 주장, 유씨 남매 “중국으로 이사해 북한 갈 일 없다”



국정원은 유가려씨의 진술을 토대로 유우성씨가 5번이나 밀입북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2005년 5월 모친 사망 당시에 장례 참석차 북한에 들어간 경우 외에는 밀입북하지 않았다는 유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엄연히 중국 연길지역에서 촬영된 사진을 북한 회령에서 촬영했다고 주장하며 밀입북의 증거로 제시하기도 하는 등 최고 국가정보기관의 수사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는 허점들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왜 보위부 공작원을 수사하지 않았을까?



유가려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이라고 스스로 자백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마지막까지 유씨를 ‘수사’하지 않고 ‘참고인조사’만 했다고 주장했다. 왜 그랬을까? 


국정원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했다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기간을 제한받고 변호인과의 접견도 거부할 수 없었다. 결국 국정원은 참고인 조사라고 주장함으로써 유가려씨를 무려 179일간 합동신문센터의 독방에 둘 수 있었던 것이다. 유가려씨의 간첩자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외부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려 한 것이라는 의혹이 짙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이 간첩수사라면 무슨 일이든 눈감아주던 시대에 횡행하던 비민주성, 무능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이라는 희대의 독재 체제를 대적하다 스스로 그 체제와 닮아버린 듯한 국정원의 모습이 뉴스타파 취재에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