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사용자의 비정규직 착취 행태도 점차 진화하는 것일까요? 지난해 자동차 공장을 중심으로 도입된 이른바 촉탁계약직이라는 신종 고용 형태가 안 그래도 힘겨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조현미 기자가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14일.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던 29살 공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1년 6개월 동안 일했던 공 씨는 지난해 7월부터는 현대차 촉탁계약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 촉탁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지 석 달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현대차 울산․전주․아산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는 모두 4만 여 명. 정규직은 3만2천여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8천 여 명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근속기간이 2년이 안 된 천6백여 명을 촉탁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하청업체에서 현대차로 바뀐 겁니다.
"2년 미만 협력업체 사람들 다 (촉탁계약직으로 전환)해야 된다고 업체에서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하기는 싫었는데 업체에서도 이번에 촉탁직으로 계약을 안 하면 이번 계약이 더 이상 연장이 안 될 것 같다."
때마침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촉탁직 가면 더 지금보다 좋을 수도 있고 정규직 될 가능성 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뭐"
촉탁계약직에게는 정규직과 똑같은 작업복과 명찰, 출입증이 지급됐습니다. 연봉도 조금 올랐습니다.
하지만 촉탁계약직은 고용형태만 달라졌을 뿐 일자리는 더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습니다. 촉탁계약직의 계약기간은 황당하게도 짧게는 하루부터 일주일, 한 달, 두 달 등 사용자 마음대롭니다.
"단기적으로 결원 생기는 부분까지 정규직으로 해야 된다라는 그 (파견법) 조항을 감당할 수도 없고 지키기도 어렵고...계약기간은 보통 1개월 하는 사람도 있고, 3개월, 6개월 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다 다르죠" "15일 짜리 계약 뭐 이런 것도 발생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는 특근 때 하루 일당을 받아 가지고 사용하시는 일당 기간제도 직접 기간제도 있고 그래서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유자재로 기간의 어떤 제한 없이 2년 내라고 하는 기한 안에 근로계약일수를 마음대로 조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폐해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우려는 곧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해 7월 촉탁계약직으로 전환된 이들은 올해 1월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는 사실상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막상 이제 돼 보니까 업체 기간이나 촉탁 기간이나 2년이 돼가니까 현대에서 계약 연장을 안 하는 거지" "회사가 그냥 인사정책이 바뀌었다, 촉탁계약한 지 2년이 아니라 업체 포함해서 2년이다 그렇게..."
사내하청 노동자일 때는 결원이 발생한 공정을 순환하면서라도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촉탁직으로 일하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아 사실상 해고된 노동자들은 다시 협력업체로 돌아가기도 힘듭니다. 협력업체에서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을 뿐 아니라 2년 이상 이미 근무한 사람을 고용하기 꺼리기 때문입니다. 오갈 데가 없게 된 촉탁계약 노동자 공 씨는 결국 이런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겁니다.
현대차가 촉탁계약직 제도를 시행한 것은 지난 해 8월 개정 파견법이 발효되기 불과 몇 주 전이었습니다. 옛 파견법에서는 불법파견이더라도 2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만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할 의무를 부과했지만 개정된 파견법에서는 근무 기간에 관계없이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의무를 부여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회사가 불법파견 문제를 비켜가기 위해 촉탁계약직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8월달부터 신 파견법에 의해서 불법파견 사업장에서 하루라도 일을 하게되면 고용의무조건이 발생하다보니까 현대자동차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촉탁직을 사용한 것이고, 혼재 공정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촉탁직을 집어 넣고 표면상으로 보면 혼재 공정을 없애는 도급화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반대했습니다."
노동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입니다.
"개정 파견법에 의하면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대상이 되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오히려 파리목숨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로 변해버리는 모순이 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의 촉탁계약직 채용 방식은 사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꼼수다"
현대차 측은 기업입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법이 바뀌면서 더 이상 기업이 그것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된다고요. 단기 촉탁직까지 경직된 정규직으로 가게 되면 솔직히 기업이 버틸 방법이 없거든요. 촉탁계약직의 비애는 저도 이 업무를 하니까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더 큰 문제는 촉탁계약직 도입을 현대차 노조가 합의해줬다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정기대의원대회 회의 자룝니다. 촉탁계약직 운영 합의 내용이 보고사항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정규직 자리에 결원이 발생하거나 한시적 인력이 필요한 경우 촉탁계약직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촉탁직 그러니까 기간제나 해고가 예정돼 있는 사람들, 노동자들을 합의를 해서 자본과 합의할 수 있는 문제냐. 이것은 노동조합이 할 역할이 아니다 그래서 촉탁직 합의서 폐기를 요구했었죠." "통상적으로 현대자동차 전체가 움직이려면 적어도 (정규직 대체인력이) 천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한 것은 노사가 공감을 하는 것이고 현장 또한 인정하는 부분인데 그것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사실은 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촉탁계약직은 현재 정규직노조인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노조인 사내하청 비정규직지회 어디에도 가입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보니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현대차)지부가 유니온숍입니다. 입사함과 동시에 조합원 자격을 가지는데 (촉탁직은) 조합원이 아닙니다. 촉탁직 문제가 마치 사생아처럼 돼가고 있는 상황이고" "촉탁직이 그냥 방치해야 될 노동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 동지들과 똑같아요. 촉탁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 안고 이들의 요구와 이들의 자리에 대한 문제들 해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고민의 지점을 만들어서 싸워야된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와중에 해고된 촉탁계약직의 빈 자리는 새로운 촉탁직으로 계속 충원되고 있습니다. 사내하청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촉탁계약직이라도 구직자들이 몰립니다.
"촉탁계약직은 진짜 있어서는 안되는 제도이죠. 특히 현대차에서는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 가운데서 촉탁직은 여기저기서 말 그대로 기계 부속품이예요. 쓰다 버려지게되는... 그런 것을 촉탁계약직이 알아야되는데..."
하지만 현대차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으로 주말 특근이 늘어나면서 부족해진 인원도 촉탁계약직으로 채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0년과 2012년 사내하청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고도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만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채용하겠다고 밝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불법파견에 이어 촉탁계약직을 도입해 또 다른 유형의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비판을 비켜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뉴스타파 조현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