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천만여 명의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 언제나 그렇듯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맘 한 구석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습니다.
[한정애 / 서울 개봉동] "학생들도 그렇고, 직장인들도 불안하니까…안정이 안되니까 항상…겁나죠."
[이윤희 / 수원시 원천동] "언제 전쟁이 날 지 모르니까 항상 좀 불안하고 그런 것 같아요."
지난 2월 북한의 핵실험. 그리고 이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대북제재 직후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북한의 위협적 발언들. 그리고 한미 연합군의 키 리졸브 훈련.
한반도는 또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듯 보였습니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사들은 거의 매일 북한의 호전적 발언들과 우리나라의 최전선 상황을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했습니다. 특히 KBS는 3월 7일부터 거의 매일 연평도나 백령도의 현장 소식을 전했습니다.
핵탄두 미사일, 벼랑 끝, 북 도발 강력 대처, 정밀 타격 준비, 경계강화, 최후 돌격 명령 대기, 대피소 개방 만반 태세 등 KBS 9시뉴스의 보도 제목만 보면, 금방이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듯한 분위기였습니다. 9시 뉴스만을 봤다면 시청자들 대부분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신들의 보도는 달랐습니다.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전달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대결국면에서도 꿈틀대는 다면적인 국제 정세를 정교하게 읽어냈습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북한의 호전적 주장들을 "허풍"(Bluster)라고 말했습니다.
[BBC]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해주시죠. 북한의 핵 위협 발언들이 모두 허풍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 전 북한의 발언들이 허풍이라고 봅니다. 물론 우리가 한국 여행을 당분간 안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것이긴 하지만요."
캐나다의 공영방송 CBC는 남북관계의 불안정을 북한의 위협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과 북한의 새 집권세력이 만들어 낸 정책적 불확실성에서 찾았습니다.
[CBC] "북한의 리더십은 아직 검증받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새 지도자와 좀 더 대화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직은 어떻게 될 지 모르지요. 또한 한국에도 박근혜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남북 모두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선 상태라 이로 인한 한반도의 정세가 어떻게 요동칠 지 세계가 근심어린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통신사 로이터 역시, 유엔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냉정함을 잃지 말자고 주장하는 중국의 또 다른 목소리에 주목했고, 뉴욕 타임즈는 중국이 북한을 버리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같은 날 중국 외교부장은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연합뉴스 특파원의 질문을 받고 대화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 장관] "대북제재가 유엔 안보리의 최후 행동이 아니며, 북핵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믿는다. 당사국들의 관심사를 대화와 협의를 통해서 포괄적이고 균형 있게 해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다"
3월 12일이 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대북제재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우리는 이해당사국들이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대화를 통해, 한반도 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성취할 효과적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3월 12일에는 미국의 백악관 안보 보좌관도 북한이 적대적 긴장관계를 푼다면 언제라도 미국은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도닐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지막으로, 미국은 북한이 좀 더 나은 길로 가길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미국은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 원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반드시 현재의 태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그럼 미국은 북한과 협상하고 이행할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날 우리나라의 국방부 대변인도 '최근 언론에 보도된 것이나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한 정도가 실제보다 과대 포장되어 있다'는 의견에 동조한다며 북한의 위협적 발언들을 심리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국민들이 일부 동요도 하고 걱정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북한의 심리적 전술에 우리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날인 3월 12일,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도 KBS 9시 뉴스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중국과 미국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 내용, 심지어는 우리나라 국방부 대변인의 말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12일에도, 그리고 13일에도 KBS에 따르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습니다.
[이재연 / 서울 광장동] "너무 과장되고 그런 게 더 있는 것 같아서…"
[홍민우 / 서울 수유동] "너무 그런 걸 믿으면 안될 것 같고 자기가 소신있게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진봉 성공회대 언론학부 교수 ] "KBS 같은 경우에도 이번 남북문제 그 다음에 북한의 위협문제를 보도하는 데 있어서 특정 목적을 가지고 본인들이 원하는 이데올로기와 적합한, 부합한 캐릭터만을 뽑아서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겠고요. 그것이 결국은 호전적인 북한의 태도를 강조하는 쪽으로 간다라고 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방송이 갖고 있는 역할 자체가 냉정하게 객관적인 보도를 해 줘야 해요. 어느 한 쪽에 치우치거나 아니면 감정을 실어서 방송을 하게 되면, 그 감정 자체가 국민들이 그 사건이나 이슈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되잖아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북한 병력의 65%,북한 총화력의 80%가 비무장 지대 100km이내에 근접해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더 타임즈는 전쟁이 나면 한국이 승리할 것이지만 인구가 밀집된 한국의 대도시들은 북한의 쉬운 타겟이 될 것이라는 섬뜩한 기사 제목을 달았습니다.
전쟁은 우리 국민의 생사가 달린 문젭니다. 철저한 안보태세를 강조하는 것은 분단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 언론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대결과 긴장국면을 유독 부추기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닙니다.
최근 KBS 9시뉴스는 북한의 심리전에 동요하지 말자는 우리 국방부 대변인의 공식 발언조차 보도하지 않는 등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 저널리즘의 가치인 것일까요?
국제 정세를 정교하게 분석할 자신이 없다면, 있는 뉴스라도 가감 없이 제대로 전달하는 것. 그게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입니다.
뉴스타파 최경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