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68일 만인 지난 6월 22일 세월호 선체 3층 로비에서 DVR(영상기록장치)이 인양됐다. 가족대책위의 증거보전신청에 따라 2개월 가까운 하드디스크 복원작업을 거쳐 DVR에 저장되어 있던 CCTV 영상 일부가 지난 8월 22일 희생자 가족들에게 공개됐다.
그러나 CCTV 화면에 표시된 시각을 기준으로 하면, 영상들은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전 8시30분59초까지만 남아 있었다. 이는 세월호가 변침하면서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8시49분보다 20분 가까이 앞선 시각이다.
뉴스타파는 최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동의를 얻어 이 CCTV 영상에 대한 정밀 분석을 시작했다. 1차 분석 결과, 영상에 표시된 시각은 실제 시각보다 15분 21초 늦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CCTV 영상이 끊긴 시각과 DVR 작동이 종료된 시각 사이에 2분 39초의 시차가 존재하는 것은 영상이 파일로 변환돼 저장되던 도중에 장비가 꺼졌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한 DVR이 꺼진 이유는 정상적인 조작에 의한 것도, 정전 발생에 따른 것도 아니었으며, 전원 플러그가 뽑혔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 지난 6월 22일 세월호 선체에서 인양된 DVR(영상기록장치)
CCTV 영상 표시 시각, 실제보다 15분 21초 늦어
CCTV 영상 분석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복구된 영상에 표시된 시각이 실제 시각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우선적으로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DVR은 일반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초기에 입력한 시간값을 계속 유지한 상태로 작동되기 때문에 여기에 저장된 CCTV 영상에 표시된 시각도 실제 시각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뉴스타파는 그 오차가 얼마나 되는 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정확한 분석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판단했다.
▲ 복원된 64개 CCTV 영상의 재생 모습
이를 위해 주목한 것은 64개의 CCTV 가운데 갑판 위를 비추고 있던 63번 화면이었다. 참사 전날인 4월 15일 밤 9시 47분 무렵, 단원고 학생들 다수가 갑판 위로 모였다. 그리고 화면의 시각이 9시 47분 26초를 가리키는 순간, 63번 CCTV 화면을 비롯해 선체 바깥쪽을 향해 있던 다수의 CCTV 영상에서 일제히 섬광이 포착됐다. 선상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이 희생된 단원고 학생 가운데 한 명의 휴대전화 동영상에도 남아 있었다. 이 영상은 밤 10시 2분 41초에 녹화가 시작된다. 동영상 속 학생들이 일제히 “3, 2, 1, 발사!”라고 외친 직후, 정확히 10시 2분 47초에 첫 번째 불꽃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 4월 15일 밤 선상 불꽃놀이 시작 순간
이 두 영상의 시각을 비교한 결과, CCTV에 표시된 시각은 실제보다 15분 21초가 늦은 것이라는 계산을 얻을 수 있었다. 휴대전화의 시각은 위성이나 기지국 신호를 기초로 한 것이어서 오차가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차를 몇몇 다른 CCTV 영상에도 적용시켜 봤더니, 기존에 알려진 상황별 발생 시각들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월 15일 밤 세월호가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모습은 CCTV 시각으로 8시 43분 경이었는데, 15분 21초를 더해보니 8시 58분을 조금 넘었다. 9시에 출발했다는 생존자들의 진술과 거의 일치한다.
▲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하는 CCTV 영상
사고 당일 아침 식당에서 배식을 시작하는 모습은 CCTV 시각으로 7시 16분 무렵이었는데, 15분 21초를 더해보니 7시 31분경이었다. 역시 7시 30분에 식당 문이 열렸다는 생존자들의 진술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
▲ 세월호 선내 식당 아침식사 배식 CCTV 영상
이에 따라 세월호 CCTV 영상은 4월16일 오전 8시 30분 59초가 아니라 8시 46분 20초까지 녹화됐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영상 중단 2분39초 뒤 DVR 종료? “찍혔지만 저장 안 됐다”
다시 CCTV에 표시된 시각을 기준으로 볼 때, 영상은 오전 8시30분59초에서 멈췄다. 그러나 CCTV 영상을 저장하는 DVR의 로그기록은 4번과 24번 카메라가 작동한 8시 33분 38초까지 남아 있었다. 실제 시각으로 환산하면 CCTV 영상은 8시46분20초, DVR 작동은 8시48분59초에 멈춘 것이다. 뉴스타파는 왜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한 것인지도 확인해 봤다.
취재 결과, 일반적으로 DVR이 CCTV에 포착된 영상을 저장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을 파일 형태로 변환해 하드 디스크에 옮겨 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치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1분에서 10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DVR에 CCTV 영상이 저장되는 과정
이런 원리는 세월호 CCTV 영상 기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마지막 2분39초 분량의 CCTV 영상에 대해 파일 변환과 하드저장 작업이 미처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DVR이 작동을 멈춰버렸다는 뜻이다.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영상 데이터를 컴퓨터에 저장시키는 과정이 진행되는 도중에 DVR이 꺼진 경우로서, 프로그램 상에는 8시 33분대까지 녹화된 것으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8시 31분 이후의 영상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지 않아 재생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DVR이 꺼지기 몇 분 전 누군가 고의로 64개 CCTV의 동작을 멈췄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는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DVR은 왜 꺼졌나? “정상 종료도, 정전도 아닌 플러그 뽑힌 것”
그렇다면 세월호의 DVR이 4월 16일 오전 8시48분59초에 꺼져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전기 장비가 꺼지는 이유는 정상적으로 전원 단추를 누르는 경우, 정전이 발생한 경우, 혹은 플러그가 뽑히는 경우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세월호 DVR의 로그기록을 분석한 결과, 정상적으로 전원버튼을 누른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정상적으로 전원 OFF 버튼을 눌러 DVR을 껐을 경우엔 로그기록도 정상적으로 닫혀서 다음에 읽어들일 때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세월호의 DVR 로그기록은 접근할 때 에러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전원이 급격하게 차단된 경우, 즉 플러그를 뽑았거나 정전이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뉴스타파 취재진과 김인성 전 교수의 DVR 로그기록 분석 모습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당 시각 세월호에는 정전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5월 초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각 지역 해상관제센터(VTS)에 장비를 납품한 업체 대표들과 한국해양연구원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참고인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사고 당일 세월호의 항적 기록이 8시48분44초부터 49분13초까지 29초 동안 누락된 이유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해수부는 이와 관련해 정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조사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세월호에 탑재된 선박자동식별장치, AIS 장비는 한 번 전원이 꺼지면 다시 정상 가동되기까지 최소 1분 이상이 걸리도록 세팅된 장비였음을 확인했고, 이에 따라 정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VTS 장비 업체 관계자는 “세월호에 탑재돼 있던 AIS 장비는 일본 JRC사가 제조한 ‘클라스A’였는데, 이 장비는 꺼졌다 켜지면 주변에서 발생하는 AIS 신호와 충돌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1분 정도에 걸쳐 환경을 분석하는 시간을 소요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따라서 꺼졌다가 켜진 뒤 첫 번째 신호를 보내기까지는 1분 10초 이상이 걸리게 되므로 29초 정도의 AIS 신호 누락 간격은 정전이 있었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 세월호 DVR이 위치하고 있던 3층 안내데스크 모습
이에 따라 DVR이 꺼지는 경우의 수는 전원 플러그가 뽑히는 상황만이 남게 되는데, DVR이 꺼진 8시 48분 59초는 세월호가 급변침해 기울기 시작한 시각으로 알려진 8시49분과 거의 일치한다. 생존자들은 당시 선내의 자판기와 소파 등이 밀려 내려와 일부 승객들이 깔리기까지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내데스크에 있던 DVR 장비도 선체가 기울면서 굴러 떨어져 전원이 분리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DVR의 평소 고정 상태와 전원 연결 상태 등을 추가로 조사해 정확히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물론 해당 시각에 누군가가 전원플러그를 의도적으로 뽑았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CCTV가 말하는 것들... “아직도 규명할 것 많아”
사고 당일 아침 세월호 기관실 CCTV에는 3등 기관사 이 모 씨의 모습이 포착됐다. 뉴스타파가 새로 확정한 시각을 기준으로 오전 8시13분부터 44분까지 공기흡입관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 CCTV 영상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나 이 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사고 직전 “커피를 타고 있었다”거나 “기관실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는 등 사실과 다른 진술로 일관했다. 만약 CCTV가 복구되지 않았다면 이 씨의 진술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 사고 5분 전까지 기관실에 머물렀던 3등 기관사의 모습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 사례는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서 세월호 참사 관련자의 허위 진술이 생각보다 많았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참사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물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기존의 VTS 레이더 영상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복구된 수천 시간 분량의 세월호 CCTV 영상에는 비록 사고 당시 상황은 남아 있지 않지만 모든 승객과 선원, 차량과 화물의 모습 등이 포착되어 있다. 또 4월 10일부터의 영상이 남아 있어 사고 이전 정상 운항 시의 모습과도 비교 분석이 가능하다. 향후 정밀한 분석을 통해 기존의 정부 발표나 수사 결과가 잘못됐다는 근거, 혹은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