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 늦은 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앞으로 모여들었다. 가슴에 달아야 할 카네이션 대신, 숨진 자녀들의 영정 사진을 두 손에 든 채였다.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KBS의 보도 행태에 불만이 쌓여 왔던 터에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김시곤 보도국장의 이른바 ‘교통사고 사망자 비교 발언’으로 분노가 폭발한 모습이었다. 유족들은 KBS 길환영 사장의 사과와 김시곤 보도국장 파면 등을 요구했지만 KBS 측은 경찰 등을 동원해 사옥을 에워싸 유족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유족들이 노상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농성을 벌인 끝에야 소수의 대표단만을 건물 안으로 들어오게 했지만, 김시곤 보도국장과 길환영 사장은 직접 사과는커녕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유족들은 청와대로 향하기 시작했지만 그 길도 더없이 멀기만 했다. 길목마다 배치된 경찰들에 부딪칠 때마다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청와대로 가는 것이니 제발 길을 터 달라며 무릎을 꿇고 비는 유족들도 있었다. 그렇게 청와대로 들어가는 문은 끝내 열리지 않은 채 새벽이 밝아왔다.
유족들의 청와대 앞 기다림이 계속 이어지던 9일 오전, KBS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KBS 홍보실은 오후 2시 김시곤 보도국장의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논란의 당사자였던 김시곤 보도국장은 회견을 통해 “자신이 세월호 사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단순 비교했다는 보도는 발언 전체의 맥락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라며 끝내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이어 세월호 관련 보도에 있어 KBS는 가장 심도 있고 선도적인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체육관 방문 당시 유족들의 박수 소리를 짜깁기 편집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의도한 결과가 아니었다며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시곤 보도국장은 보도국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혼신의 힘을 기울였음에도 보도의 공정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시에 길환영 사장에 대해서도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길환영 사장이 언론에 대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시곤 보도국장의 이 발언은 KBS가 그동안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그대로 인정한 셈이다.
그로부터 1시간 쯤 뒤 청와대 앞.
유가족들이 KBS를 찾아와 밤새 만나 달라고 요구할 때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던 KBS 길환영 사장이 돌연 농성 중인 유족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KBS의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다며 유족들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김시곤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KBS 보도 책임자의 부적절한 발언 논란과 인사권자인 사장을 향한 동반 사퇴 요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까지 사실상 확인된 이번 사태는 공영방송 KBS의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