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가 ‘식물 위원회’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대 국회 개원 이래 처리한 법안이 2년 동안 단 한 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방송의 공정성 확대가 있다. 미방위에 계류된 법안 중에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측과 종사자측이 동수의 비율로 참여하는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도록 의무화하자는 방송법 개정안이 들어 있는 것이다.
국회 미방위, 개원 이래 법안 1건 처리
편성위원회 설치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된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에서도 여야가 합의 가능 사항으로 의견에 접근한 사안이었다.
당시 여야는 “방송의 보도·제작·편성 자율성 보장을 위해 방송사 내 편성위원회를 사측과 종사자측 동수로 구성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식물 상임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여야는 지난 2월 26일 열린 국회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포함해 100여 개 안건의 심사를 마무리했다. 다만 자정을 넘겨 법안 심사가 끝나자 날이 밝으면 의결을 하자며 정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새누리당은 편성위원회 설치 개정안을 의결할 수 없다며 여야가 합의했던 일괄처리 입장을 뒤집었다. 이후 미방위는 파행됐고 백 개가 넘는 나머지 법안까지 모두 보류가 된 상태다.
새누리당은 지난 2월 26일 국회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 때까지만 해도 방송법 개정안 통과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새누리당, 방송법 개정 합의 직전 입장 바꿔
새누리당이 하루도 안돼 입장을 바꾼 이유는 종편방송을 소유하고 있는 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신문이 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측과 종사자측이 반반씩 참여해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면 민영방송사에 대한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물론 민영 방송사인 SBS와 YTN 등은 이미 자체적으로 만든 방송편성 규약에 사측과 종사자측이 동수로 참여하는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KBS와 SBS의 편성규약은 현 KBS 길환영 사장이 국장 시절,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송도균씨가 SBS 사장 시절에 직접 참여해 만든 것이다.
심지어 종편 방송사들은 방통위의 승인을 받기 위해 형식적이지만 이미 간부진과 일선 제작자가 함께 참여하는 편성위원회 설치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측과 종사자측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두도록 한 편성규약은 KBS의 경우 길환영 사장이 국장일 당시 사용자측 실무자 대표로 참여해 만든 것이다.
언론단체와 교수 등 전문가들은 방송사의 사측과 제작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하면서 방송의 공정성을 높이라는 게 법 취지인데도 그동안 유명무실하게 편성위원회를 운영해 오던 종편방송사와 이를 소유한 보수신문들이 방송의 편성권을 마치 사측의 불가침적인 권리로 생각하는 것은 방송의 사유화 야욕을 노골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고 지배구조도 바꿀 수 있다고 공약했다”며 “편성위원회는 그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후퇴한 합의인데도 새누리당이 이것마저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방송 공정성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말밖에 안 된다”며 보수신문에 굴복한 새누리당을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