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정권 이래 유례없는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즐기고 있습니다. 3개의 공중파 방송들은 새마을 운동 기념식을 약속이나 한 듯 톱뉴스로 내보내고, 연신 웃음을 보이는 대통령의 프로야구 시구를 뉴스 앞부분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땡박뉴스’란 비판을 받고 있는 공영방송들은 박대통령에 대한 최대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뉴스타파가 분석해봤는데요. 노무현 정부 때의 KBS 보도와 비교해보니, 취임 8개월 동안 톱뉴스에서 대통령을 비판한 기사의 비율이 노무현 정부 당시보다 9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정유신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정유신 기자> 땡전뉴스, 5공 시절 9시 뉴스 시보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을 빗댄 말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땡전뉴스 스타일이 부활했습니다. 성만 바뀌었습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이른바 땡박뉴스가 논란이 됐습니다.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 지나치게 박근혜 대통령을 홍보한다는 것입니다.
[최재천 민주당 의원] “대통령의 동정이나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중요한 뉴스인가요?”
하지만 방송사 대표는 지난 정권에서도 다 그랬다고 반박합니다. [길환영 KBS 사장] "정권 초기 국정 철학이라든지 여러 가지 정책 방향이라든지 이런 면에서...“
[김문환 방문진 이사장] (땡박뉴스라고 하는데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심지어 KBS는 자신들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방송사들을 감쌌고, 방송사 측은 이에 화답했습니다.
[김문환 방문진 이사장] (대통령의 패션에 대해서 과잉 보도를 하느냐 이런 주장이 나왔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패션이 강조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연 이들의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방송보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공중파 방송의 보도행태를 비교해봤습니다.
먼저 취임 이후 8개월 간 박근혜 대통령이 뉴스 첫머리에 등장한 건수.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36건, 35건이고 SBS가 42건입니다.
민영방송사인 SBS가 가장 많았지만 비판적 내용 또는 야당 주장을 담은 보도가 10건이 넘습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사인 KBS와 MBC는 비판성 보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윤창중 사태 뒤 대통령 직접 사과나 문재인 의원의 대선 불공정 발언을 머리기사로 배치한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후 같은 기간의 공중파 보도는 어땠을까? KBS 42건, MBC 52건, SBS 51건. 횟수로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톱으로 다룬 보도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을 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보도가 KBS는 9건, MBC는 무려 18건이나 됐습니다. 현재 박 대통령 때보다 9배나 많습니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인데도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집중 보도하는가 하면, 탄핵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야당의 입장을 반영한 뉴스가 첫 머리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보도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박 대통령의 경우 지난 3월 인사 파동과 5월 윤창중 성추행 파문, 그리고 9월부터 최근까지 국정원과 군의 대선개입 의혹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지도가 급락했습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노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할 때마다 대통령 홍보 뉴스를 적극적으로 내보냈습니다. 방송 보도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지탱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박근혜 대통령이 워낙 소통이 없고, 기자간담회나 기자회견 자체를 굉장히 안하고 있기 때문에 뉴스거리 자체가 굉장히 줄어든 측면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뉴스 소스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부정적인 평가보다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 같고요.” 실제 주요 정치 현안에선 사라진 박 대통령은 이른바 패션 보도 중심의 해외 순방 소식에 자주 나타났습니다.
[MBC 기자] “박 대통령도 정상회담 때 입은 옷의 의미를 털어놨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KBS의 보도는 한 술 더 뜹니다.
[KBS 기자] “아이돌 그룹 못지 않은 인기. 감춰뒀던 중국어 실력'“
이 낯 뜨거운 리포트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홍보 영상을 그대로 옮겨와 보도한 것입니다.
정작 같은 날 나간 기초연금 공약 파기 관련 보도엔 박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민]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행위를 그냥 보도만 할 뿐이지 딱히 비판적인 것은 못 본 것 같고..TV뉴스에서는 거의 못 본 것 같고요.”
[시민] “새마을 운동은 우리 어릴 때 기억으론 되게 불편했거든요. 새마을 운동은 다른 사람을 생각나게 하니까. 저희 세대는 그 시대를 싫어해요.”
박 대통령 띄우기에 프로야구 시구도 동원됐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공중파 3사 모두 5번째 주요 뉴스로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방송 3사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시구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10년 전 노 대통령 시구 소식은 날씨 앞 단신이나 야구보도 중 한 줄로 간단히 처리됐을 뿐입니다.
[김현석 KBS 새노조 위원장] “(참여정부 당시에는) 사장이나 경영진, 보도국장이 정권 비판에 대해서 크게 거리낌없이 네, 오케 하던 분위기가 있었다면...지금은 뭐 사시나무 떨듯이 떠니까 정권 비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부담되는 보도나 표현이 나올까봐 부들부들 떠니까...” 박 대통령 동정 보도엔 5공 시절 뺨칠 정도의 낯 뜨거운 문구가 많습니다.
시장에서 박 대통령의 표정을 항상 살피는가하면, [KBS 기자] “전통시장에 들를 때면 늘 표정이 밝아지는 박 대통령은 '장사가 잘됐으면...’” 감사원이 4대강 대운하 추진 문건을 공개한 날엔 박 대통령의 비키니 사진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MBC 기자] “지난 대선 당시 화제가 됐던 박 대통령의 비키니 차림의 사진도 이곳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해외 순방 보도에선 그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읽어내기도 합니다. [KBS 기자] “이번 베트남 방문을 통해 현지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 미래를 여는 새로운 박근혜 식 외교를 보여줬다고...”
[최민희 민주당 국회의원] “지금은 공정성과 공영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고, 집권 여당의 충실한 충견이 돼 가고 있다. 따라서 존재 이유가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엠비어천가에서 박비어천가로 넘어온...“
[80년 대 뉴스 중] "대통령께서는 오랜 가뭄 끝에 이 강토에 단비를 내리게 하고 떠나시더니 돌아오시는 오늘은 지루한 장마 끝에 남국의 화사한 햇빛을 안고 귀국하셨습니다.” "단비를 몰고 왔다 신문에 평이 나왔는데 말이죠. 워싱턴도 마찬가지군요"
[고승우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 “(80년대 당시) 전두환 독재정권이 심화되는데 독재정권 실상을 어떻게 알릴까. 결국 방송이 문제가 특히 심하다. 시청료로 운영되는 KBS의 보도가 제일 심하다했죠. 그래서 (수신료 거부 운동으로) 초점이 거기로 맞춰졌다.” 지난 80년대 땡전 뉴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KBS 수신료 거부 운동으로 이어졌고, 87년 6월 항쟁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방송 뉴스의 화려한 화면과 미사여구가 당장은 마음에 들지 몰라도 결국은 독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뉴스타파 정유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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