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영 기자>
경기도 가평군의 한 아파트. 한적한 이 곳에 취재 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의 사이에 혼외자식을 뒀다고 주장한 임 모씨가 친척집인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사 취재진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취재할 상황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아파트 주차장 한 가운데도, 현관 옆에도, 야외용 의자들이 줄줄이 들어차 있습니다.
지난 10월 1일부터 이렇게 많은 언론사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계속 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아파트 경비원] "오래됐어요?" (오래됐어요? 왕래가 불편하거나 그러진 않으세요?)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쫓아내든지 해야지."
[아파트 주민] "아파트가 뒤숭숭하고 이것 때문에. 맘대로 문을 열고 다녔었는데 어떻게 해놨는지 잘 안 열어져요. 현관문이."
아파트 현관문 옆 계단 입구에는 취재진들이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와 깔개가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취재진들 옆에 옷과 가방, 간식 등도 보입니다. 난방용 히터까지 갖다 놨습니다. 여기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대부분 상부의 취재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나올 수밖에 없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자들입니다.
이런 취재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려 하자 일부 기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언론사 취재진] "입주민이나 입주민 대표에게…" "(또 다른 기자 옆에서) 밥 먹으러 가자."
[언론사 취재진] (깔아놓고 이런 것은 좀 그렇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이게 남의 주택 안이잖아요?) "..." (데스크 또는 일진에게 지시 받은 게 있어요? 그냥 여기 있어라?) "특이사안 있으면 어떤 거든 보고하라."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데스크나 일진에게 따로 어떻게 행동해라 들은 것은 없나요?) "주민들에게 최대한 피해 안 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초 취재진들은 임 모 씨가 있다는 아파트 3층 현관문 바로 앞에 캠핑용 의자를 놔두고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이 SNS에 돌고, 취재 행태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3층 문 앞에서는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임 씨가 여전히 집 안에서 사실상 갇혀 있는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사 취재진이 몰려온 뒤 임 씨가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다고 합니다.
[언론사 취재진] (이후에 임 모 여인이 나온 적은 없잖아요.) "본 적은 없어요."
현장의 취재진 사이에서도 이게 과연 정당한 취재 지시인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사 취재진] "이 사람이 범죄자도 아니고...이 사람이 이런다고 말을 하겠냐고요. 이게 고문이지. 이게…"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문 앞을 지킨 야당 당직자와 취재진 등에 의해 감금돼 인권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침해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한 여성의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은 그 현장에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증거주의, 영장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사생활 보호, 그 무엇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요 언론들은 여당 후보의 말을 그대로 받아 보도했습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불법적인 선거개입 의혹을 받던 국정원 직원의 인권은 그토록 중시하던 우리 주요 언론이, 이젠 180도 입장을 바꿔 한 여인이 있는 아파트 앞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은 공무원이지만 임 씨는 일반 시민입니다.
일주일 넘게 계속되는 이런 취재 행태.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한, "민주주의의 근간인 증거주의, 영장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사생활 보호, 그 무엇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발언을 진짜 들려줘야 할 현장입니다. 뉴스타파 최경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