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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최경영의 미디어 리터러시

'시청자는 그냥 던져주는대로 받아먹는거야'

'시청자는 그냥 던져주는대로 받아먹는거야'





KBS 최고위직 간부님들에게.

사표가 수리된지 보름쯤 되어갑니다.
주변에서는 시원 섭섭하겠다고 말씀들 많이 하십니다.그런데 전 섭섭하지는 않습니다.
시원합니다.
뒤돌아보기도 싫어요.
물론 님들에게만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KBS 선후배님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는 또 함께 할겁니다.제가 꼭 '큰 집'을 장만할테니 우리 함께 일하고,음악 듣고,이야기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소주도 마셔요.
선배님,후배님들 꼭 초대하겠습니다.

간부님들.
제가 속이 좁아서 이런 말 한다고 생각치 마세요.
전 김인규 사장도 용서했고,가장 싫어했던 이병순 사장도 기억속에서 지웠습니다.
워낙 자아애가 끓어 넘치다보니 스스로 힘든건 잘 못 견디겠더라구요.
남을 미워하고 저주해봐야 저만 힘들다는 것 잘 알고 있기에 모두 대사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모두 용서하고 나니 저 역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제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어요.
기분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말 나온김에 여러분도 여러분의 아집과 위선을 비판하는 여러분의 후배들에게 그런 화해와 포용의 마음을 품어보시길 권합니다.
인사도 잘 하지 않는 후배들에게 꿍하고 계신 간부님들 있으시지요?
인사는 존경심에서 우러러 나옵니다.
물론 여러분을 따르는 일부 평기자들은 여러분에게 존경심을 표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여러분의 능력이나 인품에 대한 존경심 때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여러분의 타이틀,권력에 빌붙어 유지하고 있는 국장,본부장등의 직위가 내뿜는 '달콤한 출세의 향내'때문일 터이지요.
옛말 틀리지 않습니다.유유상종입니다.

2007년 즈음이었습니다.
방송기자연합회를 주도해 설립했던 김현석 현 KBS 새노조 위원장 (당시 KBS 기자협회장)과 방송기자연합회 창립식을 
준비할 때입니다.
현석형이 썩 괜찮은 직위(대략 국장급 이상)에도 올랐고,또 후배들 대부분이 진정으로 존경할만한 선배를 
모셔서 축사를 부탁드리자고 말했습니다.
둘이서 위 조건에 맞는 분을 찾아내려 노력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단 한 분도 떠오르지 않더만요.
방송 기자 대부분이 공감할만한 분,이 분이다 할만한 분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분들이십니다.
직위는 높으나 그다지 큰 존경은 받지 못하는…

지금 행복하신가요?
제 말이 좀 직설적입니다.
상처 줬을것 같아요.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도 상처 많이 받았습니다.
심지어 절 해고까지 했었잖아요.
요즘 KBS에 '가출한 중딩도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추행 문자 메시지'를 동료 여기자에게 보낸 이유로 중징계를 당한 기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 기자가 보낸 문자에 비한다면 전 제가 왜 그런 중징계를 당해야 했는지 사실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명박의 강아지야 나가라!"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시 KBS의 보도 태도는 권력의 충견이라 평가받을만 하지 않았나요?
지금도 별반 크게 다르지 않지 않습니까?
제 말이 틀린가요?

그래요.간부님들의 기준이야 워낙 들쭉날쭉 했으니 그것 역시 그렇다고 칩시다. 
간부님들도 알다시피 제가 주로 제기했던 문제는 경영이나 인사가 아니라 님들의 들쭉날쭉한 '보도 철학'이었습니다.
전 간부님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뉴스를 정하는지,기사의 중요도를 매기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사회 전체 공익을 위해", "사회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그 가운데서도 소외받은 목소리엔 좀 더 많은 배려를 해서" 방송하는게 
공영방송의 보도여야 하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간부님들도 동의하시지요?
더군다나 "언론의 숙명적 위치"는 정부나 대기업등 기성권력의 반대편에 있어야 합니다.
이 저널리즘의 보편적 통찰도 인정하시나요?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또, 하나의 언론사로서 기능했던 게 아니었다는 점도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KBS 보도는  주로 이명박 전 대통령,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기능해왔습니다.
마우스피스의 역할이었지요.우리말로는 주구입니다.

아십니까?
간부님들의 그간의 보도전략은 대단히 부끄럽고 또 대단히 멍청한 짓임을 아셔야 합니다.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았고,전략적으로도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직업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방기하고 집권세력의 아젠다 설정에만 충실한 보도를 음양으로 강요하다보니 
후배들은 속으론 KBS의 뉴스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개입되어있을까?
왜 이렇게 나갈까?
왜 뺐을까?
왜 이렇게 데스킹을 보는 것일까?
왜 이렇게 뉴스 순서를 배열했을까?

그리곤 비웃기까지 합니다.

오늘도 역시나.
그럼 그렇지.
오늘도 대통령,여당 순서.
야당은 양념으로 시민단체와 허접하게.
오늘은 아예 빼는구만.
저 인간도 그 자리에 가더니 마찬가지야.

간부님들의 보도전략은(사실 전 이걸 전략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그저 딸랑이들의 딸랑거림이라 봅니다.)
또 시장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KBS의 영향력과 신뢰도,그리고 성장 가능성에도 치명적 타격을 주는 바보스러운 행태입니다.
간부님들은 항상 자랑합니다. 
KBS는 영향력,신뢰도 1위다. 이게 우리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십시오. 전략적으로 사고해 보세요. 
세대별,지역별로 시청률 조사,신뢰도 조사를 철저히 한다면 KBS 시청자들이 얼마나 특정 세대와 특정 계층에 치우쳐져 있는가를 금방 
깨닫게 될겁니다.

KBS의 시청률이란 51%의 새누리당 투표율에 기득권으로 누려온 독과점적 미디어 지형 50%, 그리고 여기에 MBC나 SBS,종편등의 몫 60%를 뺀 숫자의 곱셈일 따름입니다.
51% 곱하기 50% 곱하기 40%란 말이지요.
계산해보세요.지금 9시 뉴스의 시청률과 비슷하게 나올겁니다.

특히 KBS1TV는 '보는 채널'에서 '듣는 채널'로 급격히 퇴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부 시청자들도 눈치챘습니다.
'지방의 노인들이 무의식적으로 틀어만 놓는 방송'이란 조롱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그런 방송이 시장에 통할까요?
대도시에 거주하는 2040세대가 핵심 소비층으로 분류되는 현대 광고시장에서 KBS는 '자본주의적으로' 따져도 
점점 그 매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매력이 없으면 수 년동안 9시 뉴스의 앵커를 맡은 KBS 대표 기자의 트윗 팔뤄어가 트윗 시작한지 이제 막 1년 된 
제 팔뤄어 숫자와 비슷할까요? 
뉴미디어의 수십%대 성장률과 정체되다 못해 마이너스로 치닫는 지상파 시장의 성장률을 감안하면, 
간부님들이 이끌어 가는 KBS앞에는 가파른 내리막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 추락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은 고민하셔야 합니다.
간부님들이 항상 믿어 의심치 않은 집권세력의 보호도 영원한 것은 못 됩니다. 
정치인들은 잠시 대중을 속일 수 있습니다만,자각하는 대중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변화하는 시장은 도도한 강물과 같습니다.
변화하는 대중도 마찬가지이지요.
정보 독점의 시대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과거처럼 언론이 대중보다 무언가 높은 위치에서, 정보를 선별해 일방적으로 보내주는(send) 시대가 아닙니다.
정보를 공유하고(share),시대를 공감하는(empathize) 시대입니다. 
수 많은 공유자들 속에 한 순간 돋보이는 존재는, 수 많은 공유자들이 그 때 잠시 공감하는 자일뿐입니다.
공감의 영역은 시대 정신과 함께 달라질 것이고 공감의 대상도 쉼없이 변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공유하고,공감하고,자각하는 시민들을 고려치않고 집권세력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은 무언가 높은 위치에서 정보를 선별해 일방적으로 내보내려 합니다.
간부님들은 그 대리인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집권세력이 항상 여러분의 보호막이 되어줄까요?
항상 자신들을 띄워주기만 하는 언론을 집권 세력이 과연 두려워나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들의 노리개일뿐입니다.
하기야 간부님들은 그 대가로 그 직위를 받으셨으니 개인적으로야 크게 나쁜 거래는 아닐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KBS란 회사의 전체 구성원들 입장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이런 수혜적이고 독과점적인,또 일방향적인 미디어 지형을 집권세력의 힘으로만 지키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집권세력 편향' 이란 세간의 인식이 굳건한 믿음으로 변화하는 어느 순간 
시청자들은 이렇게 물어볼것입니다.

"왜 이런 방송에 수신료를 내야하는가?"
"찍은 사람들 51%만 수신료를 내는게 합리적이지 않는가?"

그리고 시청자들은 이렇게 요구할 겁니다.
"이럴거면 차라리 여당 공영방송,야당 공영방송으로 분할하라"
"아니면 모두 해체하라"

제가  KBS 새노조의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의 주관 간사로서 경험한 간부님들의 행태를 종합해보면 
여러분은 KBS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절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공방위 사측 대표 가운데 한 분은 사석에서 제게 이런 말씀까지 하시더군요.

"최경영씨는 너무 배웠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분 말씀의 전체적인 맥락을 종합해보면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처럼 언론 자유나 뉴스의 가치 따위는 별로 따지지 않아.시청률도 좋은데 뭐가 문제냐? 시청자는 그냥 
던져주는대로 받아먹는거야.우린 이대로 갈 수 있어.'

이대로 갈 수 있을까요?

전 그렇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전 KBS를 떠났습니다.
제가 KBS를 떠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이대로 갈 수 없습니다.
둘째,이대로 갈 수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간부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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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늘(2013.4.1) KBS기자협회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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