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우리나라에서 매년 600명이 넘는 건설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아파트가 하나 서면 건설 노동자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인데요. 그런데도 사고가 난 건설사가 처벌을 받는 경우를 보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대형 건설사들은 재해관리를 잘 했다는 이유로 매년 수 백 억씩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기업체가 노무사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주고, 노무사는 사고에 대한 조사를 주도하는 근로감독관을 통해서 기업에 유리한 판정을 받아내는 비밀을 뉴스타파가 취재했습니다.
오대양 기자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아집으로 강행된 사대강 사업. 수십 조의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이십 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뉴스보도] “4대강 낙동강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로 인부 2명이 숨졌습니다. 올 들어서만 4대강 공사현장 사망자, 벌써 10명이나 됩니다.”
지난 2011년 4월. 낙동강 낙단보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노동자 두 명이 숨졌습니다. 시공사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쏟아 부었고, 하중을 견디지 못한 거푸집 동바리가 무너져 내린 탓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불량한 작업 방식으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영업정지 같은 강력한 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검찰은 시공 업체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온전히 노동자 개인의 실수로 발생한 재해로 판단한 겁니다.
[강문대 변호사] "그 사고의 경우 붕괴 추락 야간 무리한 작업 여러가지가 겹쳐있는데 그런 경우 산안법 상 하나도 안 걸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그렇고 법률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이런 처분이 가능했을까.
취재진이 입수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보고서입니다. 이 자료엔 낙단보 사망 사고 이후 시공사인 ‘두산건설’과 노무사 윤모씨 사이에 체결된 노무계약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게 해주면 성공 사례금 5천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노무법인 대표인 노무사 윤 씨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15년 넘게 일한 경력의 소유자. 계약을 맺은 후 윤 씨는 평소 안면이 있던 고용노동청 안동지청 담당 근로감독관을 찾아갑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는 검찰에 보낸 범죄 의견서에 이날 윤 씨가 담당 근로감독관을 만나 원청업체인 두산건설의 사고 관련성을 빼 달라고 청탁했다고 적시 했습니다.
노동부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은 사고 4달 만에 두산건설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광역수사대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뒤 노무사 윤 씨가 안동 지역에서 현금 4백 만 원을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이 돈이 성공사 례금으로 건네졌을 것으로 봤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담당 근로감독관 김 씨를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봤습니다. 김 씨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김 씨] "어느 정도 파악해서 오셨기 때문에 알만한 내용은 알고 오셨을 것으로 생각되고…제가 할 수 있는 멘트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
경찰은 노무사 윤 씨가 이 사건을 포함해 모두 74건의 건설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관여한 사실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뇌물 공여 혐의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들이 드러났습니다.
취재진은 실제 이 건설 노동자 사망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확인해봤습니다.
74 건 가운데 처리 결과 확인이 가능했던 것은 서른 여덟 건.
이 가운데 서른 다섯 건이 무혐의로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단 세 건에 대해서만 가벼운 벌금형이 내려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윤 씨는 자신에 대해 경찰이 제기한 혐의 일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윤 씨] "뇌물공여는 전혀 없고 사실과 다르고 변호사법 위반은 해당 안 됩니다. (그렇게 판단하시고…) 판단하는 게 아니고 법적으로 그렇습니다."
윤 씨의 ‘고객’들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두산건설, 대림산업, 동부건설, 현대산업개발 같은 대기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은 노무사 개인의 문제일 뿐, 기업이 책임질 부분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대형건설사 홍보팀] "저희는 그냥 고객일 뿐이에요. 고객이 사건을 의뢰해 왔어요. 그러면 자문은 어떻게 하는가는 아무도 모르죠, 저희는. 그냥 나오는 자문만 받을 뿐이지. 이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회사들이 어떻게 압니까."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건설사들이 윤 씨에게 지급한 돈의 규모입니다. 건당 적게는 4천 만 원에서, 많게는 2억 원 선. 일반적으로 기업 고객이 노무법인에 내는 수임료 수 백 만 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입니다.
때문에 이 비용엔 전관 변호사 알선료가 포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옵니다.
[박혜경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말이 안되죠. 4천 만 원도 말이 안되고, 2억은 더 말이 안되고. 액수를 높여서 받을 만큼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많네요."
그래도 1군 건설업체들이 사망재해 판정으로 처벌을 받아 행정 벌점을 받게 될 경우 입게 될 영업정지와 입찰 제한 같은 막대한 불이익을 감안하면 건설사는 오히려 저렴한 비용으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셈입니다.
[강문대 변호사] 피해 보상이나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고 움직인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고 그런 행태를 반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7개 대형 건설업체들이 윤 씨에게 맡긴 노동자 사망 사건은 모두 45건. 이들 업체들은 사망재해 책임을 면한 덕분에 지난해에만 산재보험료 480억 원을 감면 받았습니다.
현재 노무사 윤 씨에 대한 뇌물공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 사건은 검찰이 수사 중입니다.
뉴스타파 오대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