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기자>
ICIJ가 공개한 조세피난처 자료입니다.
뉴스타파는 여기서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고순종이란 이름의 한국인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같은 이름이 올라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008년 명단, 고순종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체납액은 70억 원이 넘습니다. 2001년부터 증권거래세와 종합소득세 등을 체납했습니다. 고씨는 국세뿐 아니라 수십억 원의 지방세도 내지 않았습니다. 고씨는 경기도에서 25억의 지방세를 체납했습니다. 경기도 체납명단에 체납 1위로 이름이 공개됐습니다. 지방세와 국세를 합해 100억원 가까이 내지 않은 것입니다. 고액체닙자 고순종씨와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고순종씨는 과연 동일 인물일까? 취재진은 고액체납자 고씨가 어떤 인물인지 찾아봤습니다.
고씨는 2002년 코스닥 등록 업체인 올에버 대표이사 재임 중 주가를 조작하고, 회사자금 137억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올에버는 코스닥에서 퇴출됐고, 고씨는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자취를 감췄습니다. 소액 주주들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씨는 주가조작과 횡령 등의 혐의를 받으면서 거액의 세금까지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체납한 100억원 가까운 세금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취재진은 먼저 고씨의 체납 지방세를 담당했던 안성 시청 세무과를 찾았습니다. 안성시청은 고씨의 체납 지방세 징수시효가 이미 2010년 7월에 만료됐다고 했습니다. 25억원 넘는 체납 세금을 받아낼 수 없다는 겁니다.
[안산시청 세무과 직원] "이 분은 재산이 나중에 발견되더라도 시효가 됐기 때문에 더 이상 압류조치는 못하죠." 국세 체납도 마찬가지, 여전히 체납액 70억원을 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러나 평택 세무서는 납세자 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고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지 여부도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평택세무서 체납담당] "기자님이 저한테 물어볼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와서 물어보시고요. 제가 기자님한테 그 사람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지 이런 부분을 왜 말씀을 드러야 되는 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현재 고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취재팀은 고씨의 마지막 주민등록지인 안성시의 한 주택을 찾았습니다. 이 곳은 고씨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다가 지난해 팔았습니다. 고씨는 이곳에 전입신고만 해놨을 뿐 실제론 거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주민] (고순종 씨는 계속 안 살고 계셨어요?) "네, 안살았어요" (언제까지 사셨는지 모르세요?) "몰라요. 우리는 전혀 몰라요." 고순종씨는 현재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내에서 그의 행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여러 경로를 통해 고씨가 현재 아버지와 함께 필리핀 마닐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씨가 고액상습체납자로 명단이 공개된 이 후인 2009년 당시 이미 고 씨의 고등학교 동문회 게시판에 그의 주소로 필리핀 마닐라의 아파트가 나와 있습니다. 이 주소를 인터넷으로 확인했더니, 수영장이 딸려 있는 고급 아파트입니다. 인근에는 골프장도 있습니다.
[필리핀 현지 부동산 중개인] "필리핀 지역 내에서 가장 최고의 콘도미니엄(고급 아파트) 중 하나입니다." (필리핀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인가요?" "네, 맞아요." 취재진은 어렵사리 연락처를 알아내 고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물론 체납 사실도 부인했습니다. [고순종 고액상습체납자] (선생님께서 한국에 체납하신 금액이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니 그 것는 지금 잘못 됐습니다." (아 잘못됐나요?) "제가 확인 좀 해보고 연락, 통화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녁에 통화하겠다던 그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거나 계속 받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다시 연결된 전화 통화. 영어로 묻자 자신이 고순종이 맞다고 했지만, 우리말로 기자임을 밝히자 자신은 고순종이 아니라며 취재진과의 통화를 계속 회피했습니다.
[고순종 고액상습체납자] (여보세요.) "뭐라고요?" (실례지만 지금 전화 받으신 분 누구시죠?)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은데요." (고순종씨 찾는데요.) "접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뉴스타파 이유정 기자라고 하는데요.) "네?" (고순종시 맞으신가요?) "아니요?" (방금 전에 맞다고 하셨잖아요.) "아니요. 여기 살았는데 지금은 없어요. 누구라고요?" (방금 전에 그런데 저한테 영어로 고순종씨 맞다고 하셨잖아요.) "아니요. 뭐 물어보려고 전화한 줄 알았어요." (저번에 들었던 목소리랑 상당히 흡사한데요. 지금 고순종씨 맞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맞으면 제가 안그러죠." 문제는 백억원 가까운 세금을 체납한 고씨가 어떻게 버젓이 해외로 빠져나가 잘 살고 있냐는 점입니다.
국세징수법을 보면 국세청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5천만 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사람은 출국 금지를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고씨에 대한 출국 금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안성시청 세무과에 그 이유를 물었지만 이미 고씨가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출국금지 등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안산시청 세무과 직원] "벌써 작정하고 떠난 상태고 필리핀에 벌써 가셨어요. 다 빼서 넘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저희가 어떻게 건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계좌 추적이라든지. 해외 재산은...권한은 세무서만 있지 저희는 없어요." 평택 세무서는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을 되풀이했습니다.
[평택세무서 직원] (고액체납자들 관련해서 출국금지 조치라든지 이런 건 따로 안하시나요?) "그것도 규정에 따라 저희가 합니다. 저희가 임의적으로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까. 이 사람이 출국금지가 됐다 안됐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자체도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거니까." 조세를 총괄하는 국세청도 마찬가집니다. [국세청 직원] (출국금지를 내려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게 에… 그런 사안가지고는 저희가 판단을 하기가 그렇고요, 제가 말씀을 못드릴께요."
국세청과 지자체는 수시로 상습, 고액 체납자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체납세금을 강력하게 징수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고씨의 사례는 그 같은 공언이 허울뿐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조세당국이 조세피난처를 악용한 역외탈세는 물론 국내 고액체납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입니다. 뉴스타파 이유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