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1년 앞두고 2년째 휴학중인 김경석군은 한 때 꿈 많은 대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학업 대신 pc방, 휴대전화 판매점, 물류센터 알바를 전전하다, 지금은 한 텔레마케팅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받는 월급에서 생활비를 제하면 1년을 꼬박 모아야 한 학기 학자금과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가 2년째 학교를 쉬고 일하는 이윱니다.
[김경석 / 숭실대 3학년 휴학]
(자주 이렇게 드세요?)
“도시락 안 싸올 때는 거의 이렇게 먹죠. 이거 말고 밥값은 너무 비싸니까.”
(학업을 계속 이어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근데 다 빚이잖아요. 생활비까지 받으면 너무 부담되는데. 지금도 제 앞으로 천 7백, 천 8백만원 정도 있는데 생활비까지 받으면 별로인 거 같아요. 제 생각은 그래요. 빚을 늘리는 거는 좀. 그냥 국가가 학생들 갖고 사채놀이 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대학생 4명중 1명은 등록금 문제 때문에 휴학을 고려중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학자금 문제는 학생들에게 큰 고통입니다.
170여만 명의 대학생이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을 대출받았지만 학자금 문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학교를 왔는데 되려 이 학자금 대출을 받음으로 인해서 제 발에 족쇄를 채웠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계속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한 달에 6십만 원이라는 돈을 갚아야만 하기 때문에. 안 그러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매번 문자가 오거나 전화가 오거나 협박 아닌 협박을 받게 됐었거든요. 학교 다닐 때부터. 학자금 대출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일대로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괜찮은 일자리는 도전해보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여유나 시간 같은 것들이 담보가 안되는 거죠. 이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실제로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은 대출금 상환 압박 때문에 허겁지겁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구한 일자리는 그만큼 열악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졸자의 취업률은 그렇지 않은 대졸자보다 높았지만 4대 보험 가입률은 오히려 낮았습니다.
[송창용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취업률 부분에서는 3%포인트 정도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이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 내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이 3~5%포인트 정도 4대 보험 가입률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취업은 빠르게 가고 있으나 오히려 그 질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예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내몰린 대졸자는 최근 3년 새 배 넘게 늘었습니다.
2009년 말 대출금을 연체한 학생들은 5만여 명이었으나 지난해 말에는 11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6개월 이상 대출금을 연체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학생은 지난해 말 현재 4만3000여명이나 됩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부 예산은 거의 들이지 않고 시중은행을 통해 학자금을 대출해주는 꼼수를 쓰면서 금리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연 7%의 고금리 대출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원리금을 갚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후 학자금 대출이 한국장학재단의 직접 대출 방식으로 바뀌면서 금리가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세상도 있습니다. 학자금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하며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는 부류입니다.
공무원 자녀들은 해마다 10만 명이 넘게 공무원연금공단을 통해 무이자로 학자금을 대출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모두 3조4000여억 원이 지원됐습니다. 정부는 예산이 모자란다며 올해 287억 원을 더 편성했습니다. 모두 국민의 세금입니다.
소득이 높아도 재산이 많아도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빌릴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1억 원 안팎의 고액연봉을 받는 고위 공무원들도 학자금 융자의 단골 고객입니다.
지난 달 29일 취임한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해 두 자녀의 대학 학자금으로 188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이 청장은 지난 2011년 각종 부동산을 처분해 1억여 원의 예금이 늘었고, 아들에게 주식투자 연습용으로 1500만원을 증여하기도 했습니다. 현금이 부족해 보이지 않지만 무이자 대출 혜택을 받았습니다.
앞서 낙마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역시 1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을 받았지만 자녀 학자금 명목으로 모두 9차례에 걸쳐 6679만원을 무이자로 빌렸습니다.
뉴스타파 조사 결과 장 차관을 제외한 정부부처 1급 이상 공무원 311명 가운데 3분의 2인 228명이 평균 2400만원 가량의 학자금을 융자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평균 재산은 9억6000만원 가량. 자녀 학자금 대출을 받을 정도로 쪼달려 보이진 않습니다.
반면에 박봉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직원들과 수백만 자영업자들은 학비를 대느라 허리가 휠 정돕니다.
[유권열 / 상인]
“똑같이 혜택을 줘야지. 왜 공무원들만 혜택을 주는가. 그건 차별이 문제가 있는 거죠.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대학교 앞.
직원모집 광고 전단지 앞에 한 여학생이 서 있습니다. 광고 전단지에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월급이 얼마인지도 적혀 있지 않지만 여학생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합니다.
정작 공부할 돈을 버느라 학업을 중단하고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은 성공으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라 밝은 미래를 가로막는 거대한 철문입니다.
뉴스타파 황일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