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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

3번째 간첩사건 ‘보위사 간첩’도 증거 희박


과연 유우성 사건에 이어 2번째 간첩 조작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이 드러날 것인가?

오는 9월 5일 오전 10시 30분 이른바 ‘보위사 직파 간첩사건’의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날 만약 ‘보위사 직파 간첩 사건’ 피고인 홍 모 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다면 2번째로 탈북자 간첩조작이 공인되는 셈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이 사건이 유우성 사건 이후에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와중에 국정원과 검찰이 이 사건을 굳이 터트린 것은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구심도 나옵니다.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남의 나라 공문서까지 위조하며 간첩조작에 나선 것이 드러나자 국정원과 검찰이 궁지에 몰렸고, 그 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우리 아직 필요해요” 라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마저 조작이라고 밝혀지면? 국정원과 공안 검찰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뉴스타파가 검증해보니 국정원이 내놓은 간첩 증거들은 근거가 희박한 게 많았습니다. 반면 간첩이 아니라는 근거는 넘쳤습니다.

탈북 브로커에게 딸과 손녀의 탈북을 부탁한 어머니

이 사건은 2013년 박 모 씨의 어머니가 딸과 7살 손녀를 북한에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박 씨 어머니는 한 탈북자 단체에서 정보팀장으로 일한다는 탈북 브로커 유 모 씨에게 딸을 데려다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브로커 유 씨는 2013년 5월 북한에서 송금 브로커로 일하고 있던 홍 모 씨에게 박 씨 모녀를 중국 땅까지 데리고 나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홍 씨는 자신의 처가가 있는 두만강 지역을 건너 박 씨 모녀를 중국으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탈북 브로커 유 씨는 강 건너 중국 땅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홍 씨 일행은 두만강을 건너지 않았고,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압록강을 건넌 뒤 홍 씨는 브로커 유 씨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연락했지만 유 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홍 씨 일행은 다른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이후 브로커 유 씨는 홍 씨가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고 국정원에 제보 했습니다.

처음 약속했던 두만강 쪽 도강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압록강 도강 후에도 자신을 위험한 곳으로 불렀다면서 홍 씨가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정원 중앙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은 홍 씨는 결국 자신이 보위사령부 지시를 받아 유 씨를 납치하려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또한 국내 비전향 장기수의 가족과 접촉하고 탈북자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에 잠입했다고 했습니다.

2014년 3월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검찰은 이 사건을 발표했고 보수 언론은 이를 ‘보위사 직파 간첩 사건’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 했습니다. 그러나 홍 씨는 지금 국정원의 회유와 강압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데려와 주겠다고 했다”
- 재판들 다 끝난 다음에 자기네 다 데려다 주겠다 이랬단 말입니다.
“데려다 준다구요? 북에 있는 가족들을?”
“ 평양에 있는 것도 데려오는데 우리, 왜 국경에 있는 걸 못 데려 오겠나? 이랬습니다 ”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요? 의문의 핵심은 왜 홍 씨가 처음 브로커 유 씨와 약속했던 대로 두만강으로 건너지 않고 수백 킬로미터를 돌아 압록강을 건넜는 가에 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은 홍 씨가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브로커 유 씨를 유인하기 위해서 처음 약속과 달리 압록강 쪽으로 갔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홍 씨는 동서인 경비대 장교를 통해 도강하려 했는데 동서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인사 이동되는 바람에 틀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씨 처남 “어머니가 반대해서 두만강으로 못 넘어간 것이다”

  국정원 “보위사 간부의 지시로 탈북브로커를 유인하려고 방향을 바꿨다”

동서가 갑자기 인사이동됐다는 그의 설명은 사실일까요?

뉴스타파는 그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한국에 살고 있는 홍 씨의 처남을 찾았습니다. 홍 씨의 처남은 (그의 신원을 가급적 숨기기 위해 그냥 처남이라고 표현합니다.)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줬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즉 홍 씨의 장모가 반대해서 경비대 장교인 또 다른 사위가 도강을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원래 홍 씨와 홍 씨 처가 식구들은 탈북해서 중국에 나가는 사람들을 돕는 브로커 일을 하는 등 북한에서는 불법이라 여겨지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홍 씨의 아내가 도강을 도와주다가 체포됐다고 합니다. 홍 씨와 가족들은 홍 씨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브로커 유 모 씨의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박 씨 모녀를 만난 장모는 박 씨가 한국으로 완전히 탈북하려는 것을 알아차렸고, 반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장모는 자신의 딸(홍씨의 아내) 등 여러 가족 성원들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만약 박 씨 모녀를 탈북시키다가 들키면 ‘다 죽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홍 씨에게 반대의사를 보였지만 홍 씨는 이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홍 씨는 당시 감옥에 들어간 아내가 ‘남편이 함께 탈북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는 말을 해서 북한 보위부의 추적을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차피 북한에서 살기 힘든 형편이니 이번 기회에 아예 탈북하겠다, 다만 박 씨 모녀의 탈북 비용을 받아 북한에 남은 동생들 등 가족이 먹고 살 기반을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위가 계속 일을 진행하겠다고 고집하자 장모는 경비대 장교로 일하는 또 다른 사위가 도와주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홍 씨의 처남은 ‘어머니가 그동안 함께 도우며 살아온 큰사위에게 너무 야박하게 할 수 없으니 인사이동을 핑계로 돕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수사내용은 홍 씨의 고백처럼 소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격자 박 씨의 증언

우리는 홍 씨 처남의 주장을 홍 씨와 늘 함께 움직이며 한국까지 들어온 박 씨를 통해 검증해 봤습니다. 박 씨는 북한에서 홍 씨가 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피해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또 홍 씨가 자신의 도강을 돕는 것을 홍 씨의 장모와 처제가 매우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습니다. 자신과 딸이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결사 반대했다는 겁니다.

결국 두만강을 넘지 못한 홍 씨는 큰아버지가 알려준 루트를 통해 압록강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합니다. 그 뒤에도 친척 아주머니 등 여러 사람들이 소개해서 마침내 압록강변에 사는 한 밀수꾼을 찾아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반면 검찰의 공소장에는 홍씨가 보위사령부 간부의 지시로 곧바로 압록강 인근까지 가서 보위사령부의 정보원인 한 밀수꾼을 만난 것으로 돼 있습니다.

8천 위안의 도강비를 받아간 보위사 정보원?

이 사건에서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가 이 밀수꾼입니다. 국정원에 의하면 그는 보위사령부 정보원인데 위 사진에서 보듯 도강비로 받은 8천 위안을 주머니에 넣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쯤이면 이 사건이 얼마나 황당한 사건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오는 9월 5일 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입니다. 어떤 판결이 나올지 지켜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