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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했던 어민들의 출동부터 도착까지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한 진도 인근 섬마을 관매도.

이 곳에 사는 이장 고씨는 4월 16일 아침 자신의 집에서 어선으로 30여분 거리인 또 다른 섬 조도에 있었습니다.

9시 6분, 고씨는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통화를 받습니다.

((맹골수도 옆으로 지나며 찍은 바다 샷.위험하게 느껴지게…))

맹골수도 해역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전화였습니다.


[이장 고씨 인터뷰] 전화 왔다. 침몰하고 있는데 알고 있냐고... 


고씨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아는 인근 섬마을의 주민들에게 

전화를 겁니다.해양수산부나 해양경찰에 전화하지 않고도 사태가 심각하단 사실을 알아챈 고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관매도의 어촌계장에게 전화를 합니다.

당시 시각은 9시 30분.이장 고씨의 전화를 받은 어촌계장은 항구 앞 작업장에서 주낙을 꿰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장의 전화를 받자마자 한달음에 마을회관으로 달려가 방송을 합니다.

여객선이 침몰하니 어선들의 구조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시각은 9시 32분경.


[어촌계장 인터뷰] 내가 방송 해서 바로 나갔다...


방송을 들은 동네주민들은 각자의 어선을 타고 즉시 사고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주민 인터뷰 [074번 01:30~]

“시간을 다투는 거라...그런 경우는 바로 방송 떨어짐과 동시에 바로 출발을 해야겠죠”

“어찌됐든 빨리 도착을 해야겠다 그 생각 뿐이죠. 전속으로 달려간거죠. 저 뿐만이 아니라...다들 한 마음으로 간거죠.”


[관매도 두번째 073번 07:00~]

“1분 1초를 다투니까 . 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도저히...사람을 구할 수가 없죠.”


9시 6분 조도에 있던 이장 고씨가 공무원이나 해경이 아닌 자신의 개인적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다시 개인적 친분이 있는 섬마을 주민들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관매도의 어촌계장에게 전화를 해서 어민들을 동원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6분.


사고 현장 인근의 다른 섬 주민들 역시 구조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와 서거차도.

사고 소식을 들은 이장들이 마을 방송으로 위치를 알리고,

주민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동거차도 이장]

면 수산계에서 빨리 마을 배들 좀 동원해달라 그래서...바로 방송해서 6척이 나갔어.


[서거차도 이장 인터뷰]

9시 20분~25분에 연락 받았다. 배가 출동한 것이 40분...



2. 우왕좌왕 정부 대응


((전환 와이퍼 또는 빅 디졸브…사고현장 화면 사진 컷으로 구성해봅시다.딱딱 하나씩.))

8시 52분 32초.전남소방본부,119로 세월호에 탑승한 한 학생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구급전화를 받은 전남소방본부는 2분여 뒤인 54분 38초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넙깁니다.   

-여보세요.여기 목포 해경상황실입니다.지금 침몰중이라는데 위차가 어디예요.배가 어디 있습니까?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지금 여기가.

-위치를 잘 모르시겠다고요?거기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경도와 위도?

-어 어제 어제.

-어제 출항하셨다구요?

-어제 8시에 출발한 것 같아요.

-배이름이 뭡니까?배이름

-세월호요.세월호.

-세월호.이게 상선인가요 뭔가요?

-예?

-배 종류가 뭐예요?여객선인가 아니면 어선인가요?

-여객선


8시 55분 55초.또 다른 탑승객이 119로 전화했습니다.

-살려주세요.점점 더 기울어요

-예. 지금 해경이 갈거예요.


8시 56분 18초.또 다른 탑승객이 또 119로 전화했습니다.

-배이름이 뭐죠?세월요

-아 인천에서 제주가는 페리호요.

-예.어제 인천에서 출발해서 여기 흑산도 옆인데요.

-예.선생님.제가 해경에 바로 연결해 드릴게요.


52분에 첫 구조전화를 받은 정부는 58분.사고를 접수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전화를 건 시각보다 6분이 늦습니다.


그리고 8분 뒤인 9시 6분.세월호에 해역내 진입한 뒤 무려 2시간 동안 아무런 교신도 하지 않던 

진도 VTS관제센터는 목포해경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제야 사태를 파악합니다.

9시 6분이면 조도에 있는 이장 고씨가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으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은 시각과 같습니다.

진도 관제센터는 여전히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VTS관제센터 전화녹취.해경 대변인에게 물어라...


9시 6분.이 시각 직후에라도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은 계속됐습니다.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침수사고 보고 1보.

승선인원 471명.현재까지 인명피해 없으며,침수로 인해 선체 경사 50도라고 저고 있습니다.

서류에 적힌 첫번째 조치 사항은 해경정 4척,함정 7척,헬기 3척 출동과 인근 유조선에 구조협조 요청,그리고  

관련부서 전파였습니다.


2보.승선인원이 4명 더 는 475명.

11시 현재까지 인명피해 없음이라며 보험 현황 1인당 3억 5천이라고 적어놨습니다.

475명중 140명을 구조했다고 적었지만

1보에 나와있는 정부의 조치사항과 비교하면 정부가 추가로 동원한 것은 헬기 한 척뿐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구조한 숫자가 174명인 점을 감안하면,정부 발표대로라면 4월 16일 11시 이후 정부는 

34명을 더 구조했을 뿐입니디다. 

2보의 조치사항에는 해수부 장관의 해경청 방문예정도 중요 사안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0시 8분.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정부의 공식 사고 접수시각인 8시 58분까지 무려 한 시간 10분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도대체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요?


-유가족 절규…적절한 것.어제것도 좋고.가서 찾을 것.

“몇 명이나 건졌어 내 새끼들을..”

“해결해 주는게 아무것도 없잖아..” (어제 방송)


500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태운 여객선이 한 시간 넘게 구조를 기다리다 침몰했습니다.

사고 해역 근처에 살던 어민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자기 일처럼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는 사고가 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왕좌왕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합니다.그러는 사이,시신도 수습되지 않을 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실종자 가족들을 짓누릅니다.  


[서거차도 선장 인터뷰]

"저도 작년에 해난사고 당해서 그 분들 심정 누구보다 잘 알죠. 찾으면 참 다행이예요…

 비록 운명 달리했지만 부모 곁으로 와야 하잖아요. 못 찾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있어요. 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