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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

‘기형적 재난대응시스템’, 국가적 수치 초래

세월호 침몰...‘청와대 보고 39분’, ‘중대본 구성 53분’ 걸려


승객과 선원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최초 사고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8시 52분이었지만 해경이 구조본부를 가동한 건 9시 10분. 청와대가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고 소식을 보고 받은 시간은 39분이 지난 9시 31분. 재난대응 지휘부인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된 건 무려 53분이 지난 9시 45분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사고 첫 날 ‘구조자 숫자를 잘못 발표’하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구조대가 선체 진입에 성공해 수색 중’이라는 잘못된 상황을 언론에 알리면서 희생자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며 국가적 불신을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총리의 지시로 국가재난 대응이라는 법적 책임을 가진 중대본의 역할이 ‘범정부대책본부’(법적 근거가 없는 임시 조직)로 넘어가면서 국가재난시스템의 침몰을 고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이 자멸한 근본 원인으로 시스템의 분산과 전문성 약화를 꼽았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은 참여정부는 범정부적인 재난 대응 체제 마련에 나서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재난 대응 기능을 통합하고 현장 전문성을 지닌 인물이 지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소방방재청’을 발족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행정자치부가 행정안전부로 바뀌면서 소방방재청의 역할이 축소됐고 지난해 개정된 ‘재난 안전 관리법’이 올해 2월 공식 발효되면서 국가재난대응체제는 안전행정부가 세월호 침몰 같은 ‘사회 재난’을 맡고 소방방재청은 태풍 등 ‘자연 재난’을 맡는 쪽으로 이원화됐다.





재난대응체제 이원화와 전문성 약화가 국민 불신 초래


과거에는 중대본이 구성되면 행자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고 소방방재청장은 당연직 차장을 맡아 신속한 초기 대응을 주도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재난대응이 이원화 되면서 현재는 중대본이 구성되면 안행부 장관이 본부장이 되고 안행부 2차관이 부본부장, 안행부 안전관리본부와 산하 3국, 1실이 지휘를 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안행부 재난대응 지휘부는 대부분 전문 경험이 없는 행정관료 출신들로 채워졌다. 또 소방방재청의 재난 전문가들은 안행부로 옮겨 오지 않아 재난대응 전문성이 크게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방재학회 정상만 학회장은 “모든 재난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구분해 대응하는 시스템은 해외 선진국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라며 법 개정 때부터 재난전문가들의 반대가 컸지만 관료 중심의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총체적인 부실덩어리였던 세월호가 유유히 바다를 떠다닐 수 있었던 것도 해양안전 관리와 재난 예방시스템의 부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수십 년 동안 일상적인 안전점검은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맡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졌다. 또 18년 된 노후선박의 증축 개조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이 선박 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동국대 행정학과 심익섭 교수는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해수부 등 정부 부처가 퇴직 관료들을 수십 년째 산하 기관들에 낙하산으로 보내는 관행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해야 기관들마저 유착하고 비리가 싹틀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는 재난대응시스템의 통합과 전문성 강화를 제시했지만 결국 관료 조직에 둘러싸여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지적하고,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 통렬한 반성과 깊은 고민을 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