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다음은 뉴스타파의 예산감시기획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순서입니다. 농산물 수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국민 세금을 투입해 만든 것이 농산물가격안정기금입니다.
그런데 이 기금이 농산물 가격 안정을 통해 농민이나 소비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거대식품 기업을 지원하는데 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홍여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홍여진 기자> 지난 13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시장. 국내에서 가장 큰 시장이지만 손님이 거의 없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장을 찾는 발길이 부쩍 줄었습니다. 소비자도 손님도 아우성입니다.
[윤병애 / 서울 논현동] “당근이 그리 무지하게 비싸더라. 당근이 그리 비싼 지 몰랐어.”
배추는 한 포기에 4000원. 지난해 이맘때보다 30% 가까이 올랐습니다. 양파 1kg은 2900원. 200% 올랐고, 당근은 1kg에 7200원에 거래되며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300% 넘게 올랐습니다.
[신경식 / 상인] “지금 단가가 솔직히 너무 비쌉니다. 양파가 1kg에 2000원대가 거의 나갑니다. 조금 낮춰야 하는데.”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게 국민 세금으로 만든 농산물가격안정기금입니다. 올해 운영규모는 3조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물가안정에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를 들여다봤습니다.
농산물 가격 안정과 수급 조정에 사용되는 예산은 6천 500억 원. 전체의 1/5에 불과합니다. 농산물 가격이 급등할 때 이를 완충하는 민간가격안정 예산은 올해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대신 농산물수출촉진과 식품산업육성 예산은 늘었습니다.
이처럼 농안기금이 수출기업에 지원되는 이유는 뭘까. 기금을 운영하는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물었습니다.
[김상백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차장] “저장이나 가공, 수출, 유통, 식품산업육성 등 이런 제반 사업을 지원하는데 이 우수 농식품 구매자금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데 있어서 수출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중소업체가 아무래도 자금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그런 영세업체들 위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전혀 다릅니다.
[한두봉 고려대 교수] “지난 MB정부에서는 농산물 수출을 상당히 공격적으로 지향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해 2012년에 농식물 수출목표를 100억 달러에 설정했기 때문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대기업을 통한 수출이 주도됐기 때문에 대기업에 지원금이 많이 늘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수출지원자금의 36%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에 연 3% 낮은 이자율로 지원됐습니다. 뉴스타파가 취재한 결과 2011년 12개 대기업이 1140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았습니다. CJ제일제당과 오뚜기는 각각 100억 원, 대상은 99억 원, 대상FNF는 193억, 샘표식품은 144억 원을 받았습니다.
이들 대기업에 국민의 세금을 굳이 지원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CJ제일제당의 지난해 매출은 7조1000억 원이고, 오뚜기는 1조5000억 원인 국내 최대 식품기업들입니다.
이들 대기업은 정부 시책을 따랐을 뿐이라며 책임을 떠넘깁니다.
[CJ제일제당 홍보실] “정부에서 저희한테 공문이 왔다 그러더라고요. 매년 해마다 봄에 너네들 (올해) 어떤 것 하고 어떻게 할 건지 이런 내용을 제출하라. 그런 식으로 얘기가 된데요. 이자는 3~4%. 정부에서 하는 정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저희도 100억 원 정도 신청해서...”
[오뚜기 홍보실] “그것은 그쪽 농유공 측에서 제안도 있었고, 지금은 금리도 그렇게 큰 혜택이 없는데 그 당시엔 그런 혜택이 있었다고 그러네요.”
농안기금에서 식품 대기업에 지원된 금액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유통공사는 식품외식종합자금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CJ푸드빌, 롯데햄 등에 최근 3년 간 396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김상백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차장] “예산이 올해 한 3천 4백억 원 정도 되는데 중소업체가 신청한 걸 먼저 다 배정해주고 남은 부분을 중소업체보다 약간 규모가 큰 그런 곳에 그 잔액을 배정해 줍니다.”
이 같은 유통공사의 해명도 사실과 다릅니다. 매출 50억 원 미만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자금은 2009년 483억에서 2011년 369억원으로 23% 가량 줄었습니다. 반면 매출 1000억 원 이상 대기업 지원액은 같은 기간 22% 가량 늘었습니다.
국내 중소 농식품 수출업체는 모두 2600여곳. 이 가운데 지난해 사업비를 신청한 업체는 190여 곳으로 전체의 10%도 안됩니다.
[이규천 / 버섯 수출 농업인] “찾아 먹지 못하는 농업인들이 안타까운 거죠. 홍보가 많이 됐으면 좋죠. 농가들이 좀 더 현대화된 시설에서 고정적인 생산이 돼서 수출(시장)에도 나갔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죠. 사실 열악하거든요.”
[남윤현 경기도 화성시 포도수출협의회장]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지네들 내버려둬도 잘 하는데, 사실 우리같이 조그만 곳은 지원을 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굉장히 떨어져요.”
반면 대기업들은 예산을 지원받는데 거의 제약이 없습니다. 자금 지원 규정 가운데 국산원료를 반드시 30%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제품의 성분 표시를 보면 30% 규정은 커녕, 주요 재료 가운데 국산으로 표시된 농산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실을 유통공사는 알고 있을까.
[김상백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차장] “저희는 수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수출을 봅니다. 수출을 50% 이상 이행했는지...”
사업 평가점수 100점 가운데 90점은 수출 성과와 관련된 것입니다. 국산품을 사용하라는 규정을 위반해도 5점 밖에는 감점되지 않습니다. 자금 지원을 토해 우리 농산품 구매를 유도한다는 유통공사의 말은 허울 뿐입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 “농안 기금이 수출대기업 위주로 쓰여진다면 취지에도 맞지 않고, 우리 국민들도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소비자와 지역의 농민들 모두 상생하고 협력하는 그런 사업에 쓰여지는 것이 취지에도 맞고, 그게 우리 국민들이 농안기금에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본 뜻하고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1000억 원이 넘는 국민 혈세가 식품 대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흘러 들어가면서, 중소기업과 농민, 소비자들의 주름살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든 농산물가격안정기금.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뉴스타파 홍여진입니다. |